(3) 프랑스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가장 짜임새 있는 강력한 절대주의 체제를 수립한 나라. 프랑스의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로의 발전은 백년전쟁의 피해로부터의 재건과정을 통하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프랑스와 1세 때 매우 견고한 기반.
16세기 후반 위그노(Huguenots) 전쟁(1562-1598)으로 인하여 왕권이 흔들리고 귀족세력이 다시 강화. 이 전쟁으로 혈통이 끊긴 발루와 왕조 대신 앙리 4세 부터 부르봉왕조가 들어섬.
앙리 4세 - 낭트칙령(1598)으로 신교도인 위그노에게 신앙의 자유 허용, 종교전쟁 종식, 농업과 견직물공업을 비롯한 산업의 발달을 꾀하고 왕권을 강화 절대왕정의 튼튼한 기반을 마련.
앙리 4세의 뒤를 이은 루이 13세 - 추기경 리슐리외(Richelieu) 등장. 철저한 현실정치가로서 재상에 오르자 왕권의 강화와 국위선양을 위하여 전력, 국내의 요새를 파괴하여 귀족들의 음모와 반항을 분쇄하는 동시에 국왕에 의하여 임명되는 지방장관(intendant)을 신설하여 모든 지방행정을 관장케 함.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개인의 신앙을 초월하여 국익을 추구하고, 30년 전쟁에 개입하여 프로테스탄트를 지원하고 전쟁말기에는 직접 참전하여 합스부르크왕가의 세력 삭감을 도모.
루이 14세초기(5세) -이탈리아출신 추기경 마자랭(Mazarin)이 재상, 파리에서 프롱드(Fronde)의 난→프랑스의 최고법정인 고등법원과 대귀족의 왕권에 대한 반란으로서 이 반란이 진압되자 귀족세력은 결정적으로 왕권에 굴복.→ 마자랭 사후 루이 14세는 재상을 두지 않고 직접 통치를 하면서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절정기.
재무상 콜베르(Colbert)-부르주아 출신으로 전형적인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콜베르주의), 국내공업을 적극적으로 보호, 육성하고 수출증대를 꾀하는 한편 해외 식민지획득에도 적극적.
그 외 베르사유 궁과 같은 문화적 융성과 함께 군사력에서도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소유.⇒17세기 후반 프랑스는 명실 공히 유럽의 지도적인 국가가 되고, 루이 14세는 절대적인 권력을 누림.
이러한 국력의 증대와 축적은 루이 14세의 야망을 자극, 여러 차례 침략전쟁, 대표적인 것-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무모한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였을 뿐 아니라 종교적 통합을 도모하는 뜻에서 낭트의 칙령을 철회하여 약 30만의 유능한 상공업자, 기술자, 병사들이 영국, 네덜란드, 프로이센 등으로 이주, 루이 14세 말기에는 프랑스의 재정 상태는 크게 악화.
이 시기에 등장한 것 - 유럽국제정치의 틀이라고 할 세력균형이 나타남. 그것은 어는 한 국가가 지나치게 강대해져서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경우 그 위협을 받는 국가들이 동맹을 맺거나 합세하여 이에 대항함으로써 국제정치의 세력균형을 회복하는 것을 말함. 영국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조건을 살려 이러한 세력균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 대륙의 강대국의 반대 세력에 주로 가담, 대륙에서의 전쟁을 틈타서 해외식민지 획득에 주력.
4) 영국
튜더 왕조의 헨리 7세와 헨리 8세 치세 아래 중앙집권화 과정. 귀족을 중앙행정의 담당자로 끌어들이는 한편, 지방행정에 대해서는 지방의 젠트리 계층을 치안판사로 임명하여 전 국민을 지배하고자 함. 특히 헨리 8세는 수도원 해산 및 토지 몰수를 통해 왕실의 재정적 기반을 닦고, 종교개혁을 국왕의 권위를 높이는 데 이용.
이러한 중앙집권화 과정에도 영국의 절대 군주권은 에스파냐나 프랑스와 비교하면 취약한 편.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신분 의회가 절대왕권의 강화와 함께 무력해진 것과 달리 영국의 의회는 튜더-스튜어트 시대에도 여전히 왕권을 제약하는 역할. 절대 군주는 강력한 군대(육군)를 가질 수 없었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징이 군대를 강화하려는 국왕의 기도에 제약. 튜더-스튜어트 시대의 국왕들은 귀족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지방 귀족의 지배로부터 농민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도 없었다. 16세기 중엽 이후 영국에서 농민의 희생을 통한 시초 축적이 진행되었을 때 절대왕권은 귀족과 신흥 지주의 탐욕에 사실상 방관자. 나아가 영국 절대주의는 부르주아의 부를 비생산적인 영역으로 흡수하는 유인장치를 마련할 만큼 정교하지도 강력하지도 못했다.
※ 유럽의 절대주의 국가는 나라마다 고유한 발전 경로를 거쳤지만, 그럼에도 왕권강화와 국민 통합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공통점. 이들 국가는 단순히 영역적이고 분산적인 지배에 머물렀던 종래 봉건국가들과 달리 이전의 봉건국가에서 왕권을 제약했던 신분의회는 점차 약화되었고, 대신 국왕이 중앙 및 지방행정을 담당할 관료 조직의 정비와 힘께, 국내 치안과 방어를 목적으로 상비군을 만들어 운영. 에스파냐의 레트라도스(letrados), 프랑스의 지사제, 영국의 치안판사제 등이 재정비된 관료조직에 해당. 상비군의 전형적인 예는 프랑스의 칙령군과 에스파냐의 보병군. 한편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절대주의 지배 세력은 국가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 국민에게 조세를 부과함과 아울러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국내 상업과 공업 기반을 육성하는 데 적극.
서유럽 절대주의 국가들의 특징인 관료기구, 상비군, 공통된 법체계 및 국민적 조세제도 등은 모두 근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절대주의 국가의 근대적인 성격).
그러나 절대주의 체제는 서유럽에서 농노제 해체 위기에 직면한 봉건 지배 세력이 그와 같은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편성한 새로운 지배 체제. 농노제가 약화될수록 봉건영주들이 개별적으로 농민 잉여를 빼앗는 것이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그들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중적인 지배 기구를 통하여 전국 차원에서 일반 민중의 잉여를 수탈하게 됨. 즉 봉건 지배 세력은 정치 및 사법상의 강제력을 중앙권력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절대 국가는 이러한 움직임이 맺은 결과. 그 과정에서 봉건귀족들은 이전의 독자적인 지배권은 잃었으나 대신 새로운 지배체제 아래서 경제적 이득. 전 국민적 과세는 ‘집중된 봉건지대’.
이렇게 절대주의 지배 구조의 근본적인 성격은 봉건적이었으나, 다른 한편 그것은 상품 생산 및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중첩됨으로써 상승하는 부르주아 일부를 그 지배 구조에 편입. 봉건사회의 중층적인 소유권 대신 새롭게 대두한 절대적 사유권은 부르주아의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고 또 그 과정에 이바지. 절대주의 국가의 지배 세력에 포함된 귀족과 부르주아를 경제적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절대주의 국가들이 성장하면서 그 지배 체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정치 이론과 사회적 분위기도 출현. 절대주의 정치 이론을 주장한 사람들은 강력한 군주권 아래서만 사회적․ 정치적 조화가 가능하다고 주장. 국왕의 권력을 신성화. 신의 권능과 군주의 절대적인 권한을 연결 짓는 이른바 왕권신수설은 루이 14세, 영국의 제임스 1세 등 군주 스스로 표방하고 실천하는 이념으로 작용.
그러나 이론을 넘어 당시 많은 서민들이 군주의 절대주의적 지배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특히 17세기의 잦은 전쟁과 사회적 혼란기에 사람들은 중앙집권적이고 강력한 정부에서 절서를 기대, 그 강력한 정부의 체현물은 바로 절대 군주. 국왕들은 이러한 사회심리적 분위기를 적극 이용.
서유럽 각국의 절대주의 지배 세력은 부의 양도를 강요하거나 수탈하는 방식으로만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봉건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크고 작은 전쟁과 정략결혼, 영토 확장이 끊이지 않았다. 관료조직과 상비군을 운영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따른 재정 부담은 특히 경제적 수축기였던 17세기에 이르러 가중.
절대 군주들은 영토 확장 야욕을 감추지 않았는데, 특히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네덜란드 상속전쟁(1667~1668), 네덜란드 침입전쟁(1672~1678), 아우구스부르크 동맹 전쟁(1668~1697), 에스파냐 계승 전쟁(1701~1714) 등에서 여러 차례 충돌. 이들 전재의 배후에는 프랑스의 대외 팽창을 이룩하고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루이 14세의 정치적 야심이 작용. 두 나라는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려.
절대주의지배 세력이 영토 확장과 중상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대외 전쟁에 전념한 것은 이 체제가 갖는 근본적 불안정성 때문. 절대주의 체제는 봉건세력의 특권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으나 동시에 부르주아 일반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기도(절대주의의 내적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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