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에 대해 공부하며 다소 씁쓸함을 느꼈다.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정책, 민심도 중요하지만 리더십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인데, 광해군에게선 강력한 리더쉽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만약, 아무리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도 광해군이 강력한 리더십을 가졌더라면? 서인세력을 자기 편 으로 만들었더라면? 그가 폐모살제를 하여도 국왕의 자리까지는 쫓겨나지도, 연산군과 같은 君으로 강등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광해군이 계속 집권하였으면 과거의 조선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도 더 강한 나라이면 나라이지, 결코 약한 나라로 바뀌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 때 무너지고 다른 국가가 섰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어릴 적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임란이 일어난 후 광해군의 집권한 다음인 인조 대부터 조선이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외교적, 국제적인 힘이 얼마나 약해지고 발전보다는 쇠퇴, 또한 성리학의 세속화로 여자이기에, 신분이 천하기에(과거에도 이러하였지만, 더 심해졌다는 것.) 아까운 인재들이 그 재능을 꽃피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결과를 초래했기에, 광해군의 리더쉽이 많이 아쉬웠다.
광해군의 과실은 광해군이 지시하였든 대북파가 지시하였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가 연산군과 같은 폭군, 혼주로 불릴 만큼 악덕정치를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한반도 최고의 전쟁 이였던 임진왜란을 몸으로 지키며, 또한 전후 재정비를 위해 힘쓴 것과 뛰어난 외교적 능력으로 당시 혼란하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을 극복했던 그의 업적을 무시한 채 폭군이라고 매도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결국 광해군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폄하된 평가를 받고 있던 것이라 그에 대한 역사학계에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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